종단간 암호화는 아주 구체적인 뜻을 가진 말인데, 마케팅은 자꾸 그걸 훨씬 큰 뜻으로 부풀린다.
구체적인 뜻은 강력하고 지켜 낼 가치가 있다. 혼란은 부풀린 뜻에서 시작된다.
짧게 말하면 이렇다. 종단간 암호화(E2EE, End-to-End Encryption)는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의 기기에서 암호화하고, 받는 사람의 기기에서만 복호화한다는 뜻이다.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것 — 앱 회사의 서버, 통신사, 카페 와이파이 — 은 열쇠 없는 암호문만 실어 나른다. 여기서 ‘종단’은 양쪽 기기다. 회사도 아니고 서버도 아니다.
프로토콜 차원에서 보면, 복호화에 필요한 키를 대화하는 양쪽 기기만 갖고 있으니 서비스 제공자는 메시지 평문을 읽을 수 없다. 제공자가 영장을 받든, 해킹을 당하든, 압박을 받든, 스스로 풀 수 없는 메시지 내용은 넘겨줄 수가 없다.
강력한 보장이다. 하지만 “내 대화는 어느 모로 보나 완전히 비밀이다”와 같은 말은 아니다.
E2EE가 실제로 보장하는 것
보내는 기기가 받는 기기만 풀 수 있는 키로 메시지를 암호화한다. 메시지는 암호문 상태로 제공자의 서버를 지나간다. 제공자는 메시지를 라우팅하고, (잠깐이든 오래든) 저장하고, 전달하지만 읽지는 못한다.
Signal, WhatsApp, 그리고 Google 메시지(이 앱 사용자끼리의 RCS 채팅)가 쓰는 Signal Protocol이 사실상 표준이다. Double Ratchet 알고리즘으로 전방 비밀성(키 하나가 털려도 지난 메시지는 풀리지 않음)과, 암호학자들이 침해 후 보안(post-compromise security)이라 부르는 성질(키를 도둑맞아도 다음 래칫 단계에서 공격자가 다시 차단됨)을 제공한다. 메시지마다 키가 다르다. 메시지 하나가 어떻게든 풀려도 나머지는 그대로 보호된다.
진짜 기술이고, 잘 설계된 기술이다. 메시징 서비스에 당연히 요구해야 할 수준이다.
E2EE가 지켜 주지 않는 것
메타데이터. 제공자는 메시지를 읽지 못한다. 하지만 누구에게, 언제, 얼마나 자주, 얼마나 오래, 어디서 메시지를 보냈는지는 안다. 연락 관계 전체 — 누구와 연락하고 어떤 패턴으로 연락하는지 — 를 안다. 메타데이터는 내용만큼 많은 걸 드러낼 수 있다. 기자의 연락처 목록, 내부고발자와 기자가 주고받은 메시지의 시각, 두 사람이 연락하는 빈도 — E2EE가 있어도 전부 제공자 눈에 보인다.
NSA와 CIA 국장을 모두 지낸 마이클 헤이든은 2014년 한 토론에서 이렇게 잘라 말했다. “우리는 메타데이터를 근거로 사람을 죽인다.” 프라이버시의 각주 정도로 넘길 얘기가 아니다. E2EE가 지키는 범위의 근본적인 한계다.
기기 침해. 휴대폰이 해킹되면 — 악성코드, 스파이웨어, 오염된 운영체제 — E2EE는 아무 의미가 없다. 공격자는 기기 안에서, 암호화되기 전이나 복호화된 뒤에 메시지를 읽는다. 암호화는 전송 구간을 지킬 뿐 기기 자체를 지키지 않는다. Pegasus 스파이웨어가 바로 이렇게 움직였다. 암호화를 깬 게 아니라 기기를 장악했다.
백업. WhatsApp 메시지는 전송 중에는 종단간 암호화된다. 그런데 채팅을 iCloud나 Google Drive에 백업하면, 그 백업은 암호화돼 있지 않거나 클라우드 회사가 쥔 키로 암호화돼 있을 수 있다. 전송 구간에서는 보호받던 메시지가 클라우드에는 평문(또는 풀 수 있는 암호)으로 쌓이는 셈이다. WhatsApp은 2021년에 종단간 암호화 백업을 선택 기능으로 추가했다. 기본값은 아니고, 직접 켜야 한다.
그룹 키 관리. 1:1 E2EE는 잘 정립돼 있다. 그룹 채팅은 더 어렵다. 누가 들어오거나 나갈 때마다 키를 바꿔야 한다. 구현마다 방식이 다르고 보안 수준도 제각각이다. 그룹 채팅 구현 중에는 1:1보다 보장이 약한 것도 있다.
서버 측 처리. E2EE를 내세우면서도 링크 미리보기, 스팸 탐지, 콘텐츠 검열 같은 기능을 위해 메시지를 서버에서 처리하는 서비스가 있다. 서버가 메시지로 링크 미리보기를 만들 수 있다면, 서버가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처리 단계에서는 암호화가 깨졌거나 애초에 적용되지 않은 것이다.
“이제 이 대화는 종단간 암호화됩니다”
앱에 이런 문구가 떴다면, 그 대화가 참여자들의 기기에만 있는 키로 전환됐다는 뜻이다. Meta가 2023년 12월부터 메신저의 개인 채팅을 이렇게 전환하기 시작했고, 사용자들은 이 안내 문구로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문구는 좁게 읽어야 한다. 그 대화의 새 메시지를 이제 회사가 읽을 수 없다는 것까지가 이 문구의 내용이다. 메타데이터에 대해서도, 백업에 대해서도, 상대방 화면에 도착한 뒤의 메시지에 대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E2EE”라는 말이 오해를 부를 때
텔레그램. 텔레그램의 일반 채팅은 종단간 암호화가 아니다. 클라이언트-서버 암호화다. 텔레그램 서버까지 가는 동안은 암호화되지만 키를 텔레그램이 갖고 있어 내용을 읽을 수 있다. 직접 시작해야 하고 여러 기기에서 쓸 수 없는 ‘비밀 대화’만 E2EE다. 사용자 대부분은 텔레그램 메시지가 전부 암호화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카카오톡도 마찬가지다. 일반 채팅은 종단간 암호화가 아니고, 2014년 12월에 추가된 ‘비밀채팅’만 E2EE다.
Zoom. 2020년 Zoom은 “종단간 암호화”를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전송 구간 암호화였다. 트래픽은 Zoom 서버까지 암호화됐지만 Zoom은 내용에 접근할 수 있었다. 나중에 진짜 E2EE를 구현했지만, 처음 홍보는 FTC 제소를 부를 만큼 사실과 달랐다.
이 용어는 마케팅용 체크박스가 됐다. “우리는 E2EE를 지원합니다”라는 말은 “모든 메시지에 기본으로 Signal 수준의 암호학적 보장”부터 “설정을 잘 찾아 들어가면 일부를 가끔 암호화”까지 무엇이든 뜻할 수 있다.
수사기관과의 긴장
E2EE는 정치적으로 늘 논쟁거리다. 각국 정부는 법원 명령이 있으면 수사기관이 메시지를 복호화할 수 있게 하는 ‘합법적 접근’ 장치를 꾸준히 요구한다. 미국, 영국, EU, 호주 모두 E2EE를 약화하거나 우회하려는 법안을 내놓거나 통과시켰다.
암호학의 현실은 냉정하다. 선한 사람만 쓸 수 있는 백도어는 없다. 수사기관이 메시지를 풀 수 있게 하는 장치는 범죄자도, 외국 정부도, 내부자도 악용할 수 있는 장치다. 2015년 이 분야의 이름난 암호학자·보안 엔지니어 15명이 쓴 보고서 「Keys Under Doormats(현관 매트 밑의 열쇠)」의 결론이 이것이었고, 이후 논쟁이 반복될 때마다 같은 결론이 되풀이됐다.
정치의 현실도 냉정하다. 수사기관의 압박은 실재하고, 기술적 논증은 입법 논의에서 잘 통하지 않으니 정부는 계속 밀어붙일 것이다.
이 긴장은 해소되지 않는다. 오락가락할 뿐이다. 진짜 E2EE를 제공하는 서비스는 앞으로도 계속 정치적 압박을 받을 것이다.
실제로 확인해야 할 것
어떤 서비스가 E2EE를 내세운다면 이렇게 물어보자.
- 기본으로 켜져 있나, 직접 켜야 하나? (직접 켜야 한다면 대부분의 사용자는 안 켜고 쓴다.)
- 모든 종류의 메시지에 적용되나? (텍스트는 암호화하면서 사진·음성·영상은 빼는 서비스도 있다.)
- 백업은? (전송 중엔 암호화돼도 클라우드 백업이 평문이면 의미가 없다.)
- 제공자는 어떤 메타데이터를 수집하나? (E2EE는 내용을 지킨다. 메타데이터는 별개 문제다.)
- 구현이 외부 감사를 받았나? (Signal 프로토콜은 공개돼 있고 감사를 받았다. 독자 구현 중에는 그렇지 않은 것이 많다.)
E2EE는 우리가 가진 가장 중요한 프라이버시 기술 중 하나다. 그래서 마케팅식 과장이 아니라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무엇을 지키는지 알고, 무엇을 지키지 않는지 알자. 그리고 구현을 확인하지 않은 채 이름표만 믿는 건 그만두자.